동식물 유전자 다양성 보존 82

반딧불이

뒤집힌 모습똑바른 모습그 많던 반딧불이가 다 사라졌다. 매년 한마리 정도는 날아다닌다. 사라진 이유는 다슬기나 제첩 같은 중간숙주가 어떤 이유인지 기능을 못해서 인 듯 하다.70년대 말까지는 동네 수로에 많았다.우연히 방안으로 반딧불이 들어왔다.사진 찍고 다시 마당으로 내 보냈다. 아마도 집앞 수로에서 날아 오는 듯 하다.

야생 참외 ? 줄외 주래

참외나 오이 잎줄기처럼 보인다.꽃은 참외나 오이처렁 핀다. 열매는 탁구공보다 조금 작다. 노랗게 익으면 단맛이 난다. 푸른 것은 쓴맛이 난다. 이 열매를 무슨 약재로 효능이 있다고 한다.10여년 전엔가 줄외를 대량으로 재배한다는 농가가 있었다.그후 소식이 없다. 약재보다 관상식물로 더 좋아 보인다.화분에 심어 유리창으로 올리면 그늘도 만들고 보기 좋을 듯 하다.

미인송 닮은 소나무

뒷동산이다. 지금은 이런 아름드리 소나무와 참나무가 울창하다.50년 전에는 민둥산이었다. 당시 인구 대다수가 농촌에 살았다.난방과 취사는 검불이나 나무였다.그러니 어린 나무 자르는 것은 별 의식이 없었고 산지는 나무 없는 민둥산이었다. 우리동네 뒷동산도 민둥산. 당시 정부는 나무 심기를 시작하였다.나무는 정부에서 공급하고 주민 불러 모아 민둥산에 심었다. 지금은 없다시피 한데 당시 4H라는 청년조직이 동네마다 있었다. 회원은 미성년자와 20대 초반. 4H 구호는 지덕노체(知德勞體)를 함양하자.농촌지도소(현재농업기술센터) 소속이었다.70년대 말까지도 농촌에 인구가 많아 활동이 활발했다.현재 모습 뒷동산 팽나무도 나서 자라고 참나무가 많아졌다. 이 뒷동산에 50여년 전에 4H회에서 소나무를 심었다. 당시 지..

농작물의 퇴화 ㅡ녹두 동부

야생화된 녹두 새로운 녹두 품종이 아니다.재배하는 녹두가 씨앗이 들에 떨어져 자생하기 시작한 것이다.현재 재배하는 원종으로서 야생콩은 볼 수 없다.재배콩이 반대로 야생화하는 경우가 이렇게 있다. 야생녹두의 특징이다.알이 아주 작다.야생의 꼬투리만 보면 재배 녹두와 차이가 없다.녹두알은 먹지 못한다.너무 단단해 삶아도 물러지지 않는다고 한다.혹시 모르나 야생녹두를 씨앗 받아 재배하면 다시 개량이 될지는 모르겠다.야생녹두를 수확해 갈아서 먹거나 녹두나물용으로는 용도가 있을지 모르겠다.야생녹두야생동부 즉 갓끈콩 갓끈콩도 야생화되었다.야생화 즉 퇴화하니 콩알이 아주 작다.

개물곳 반하

반하 꽃은 천남성 비스하다. 반하라는 식물이 있다. 여기는 개물곳이라 불렀다. 물곳은 무릇의 사투리이다. 무릇인데 개무릇 즉 가짜 무릇이란 뜻이다. 잎이 세개씩 난다. 밭에 보리를 파종할 때는 진짜 반하가 밭에 많았다.일종의 잡초처럼 자랐다. 지금 밭은 보리나 밀을 파종하지 않는다.거기다 풀방지약도 뿌린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지금 밭은 반하가 없다.대신 농지가 아닌 곳에는 반하가 간혹 있다. 독초 일종이고 70년대는 알뿌리를 캐서 말려 팔았다. 집집마다 여름에 밭 매면서 나온 반하를 하나씩 주워 모으면 2리터 되로 한되 정도까지도 모았다. 초등학령 아이들도 창을 들고 캐러 다녔다. 말리면 백색의 둥근 콩알 크기가 된다. 독초이지만 약재의 원료가 된다. 약장사가 캐어 말린 반하를 사러 왔다. 오래전 아버지..

산나리

산에 자생하는 나리이다. 여기도 어디 산에서 자생하는 군락지가 있다.오래도록 그 자리에서 보존되기 바란다.산나리 꽃은 오래가지 않는다. 향기도 없다. 화려함은 으뜸이다. 매년 마당에서 저절로 자리를 넓혀간다.시골 마당은 흙 안 보이게 콘크리트 포장이 대세이다.각종 대형 농기계를 주차할 공간이 많이 필요해서이다. 나는 마당도 넓고 대형농기계도 없어 아직 예전의 꽃밭을 유지하고 있다. 나이들면 남자들도 여성화되어 꽃을 좋아한단다? 그렇든 말든 마당에 핀 꽃은 정서적으로 좋다. 나리꽃 많이 번식시키게 씨앗 모종하고 싶다.

옛날 백합 두개 피었다

70년대 초 동네 어디에 이런 백합 군락지가 있었다.집터였다.집터 옆집은 해방 전 일본 사람이 살던 집이었다. 어떤 계기인지 몰라도 당시에 많은 이런 백합이 그 집터에 가득했다.해방 후 최소 25년이 지난 시점이라 일본인이 살면서 심은 백합일 수도 있었다. 그후 어느 해인가 다시 가보니 백합은 없었다.집터가 대밭이 되면서 그늘지니 백합이 더 이상 살지 못하게 된 듯 했다. 여기서 드는 의문 하나. 요즘 토종백합 또는 당나리라는 백합의 일종이 주목 받는 듯 하다.조선시대 이전부터 중국에서 도입된 백합이라고 한다.혹시 그 집터의 백합이 토종 백합 또는 당나리는 아닐지? 분명한 것은 동네주변 야산이나 들에서는 그 백합이 자생하지 않았다.사람이 심어서 였겠지. 당시 옆집에서도 그 백합을 심을 이유가 없었다.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