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읽기

1.논어를 읽어 보기로 한다

마늘밭고랑 2024. 11. 17.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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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청소년 시절 영어로 글 쓰고 말할 정도의 영어 실력이 없었다.
아니 영어를 못했다.  

그런데도 영어 공부보다  자발적으로  어느 해 겨울에 전기도 안 들어오는 농가에서 호롱불 아래에서 혼자 천자문은 땠다.

이어 다음해 방학 동안 학술용 한자도 3000자를 단어중심으로 암기했다.지금은 안 쓰니 많이 잊었다.

이렇게 하니 대학시절 교재가 한자가 많았지만  교재에 나오는 한자는  모르는  것이  없었다.

내가 봐도 정말 이상한 아이였다
대학에서 한문이나 역사를 전공할 생각이 없었는데도 말이다.

이렇게 한자 기초가 다져져 있어  당시 한문 고전은 떠듬떠듬 읽을 수 있었지만 정작 논어를 안 읽었다.

물론 다른 고전도 안 읽었다.

대신 조선시대 비문이나 족보는
읽을 수 있었다.

남의 조상의 비문 족보 본다고 해서 내게 남는 것이 없었다.

1900년대 이전 우리 조상 족보는 집에서  나만 볼 수 있어 그나마 유익하긴 했다.

TMI 남의 조상 족보찾아주기도 가능한데 아직까지 의뢰를 받은 적은 없다 ㅎㅎ
졸부된 사람들 혼맥 만들기용으로 족보 찾아주면 돈 벌텐데 ㅎㅎ

각설하고

이렇게 한자를 알고 있었는데도 80년대 총서 형식 전집으로 또는 단행본으로 발간된 논어를 안 읽어봤다.

현대 교육에서는  논어는 필수 과목이 아니었으니 안 읽었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소설 읽 듯이 읽는다면 의미도 없을 것이라 안 읽은 것이 차라리 다행이다.

한문 전공이 아닌 사람이 재미도 없을텐데 원문으로  논어를 읽었다면 특별한 사람으로 여기고 싶다.

나도 이제 스스로 특별한 사람이 되어 보고 싶어 읽기로 한다.

100년전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에게 친숙했던  책이 사서삼경 아니던가?

나도 육십갑자를 한바퀴 돌아 100년전 분들과 저승에서 만날 날이 얼마 안 남았으니 사후 세계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나 만난다면 대화꺼리 정도는 가지고 가야 할 것이 아닌가 ?

웃자고 한 소리이다.

어떻든 이제 나도 이 사회의 나이로는 상층이 되었다.
머리가 희어지면 논어 정도는 읊조려야 하지 않을까?

더 배울 건 세계경제나 과학이지만 잠시 내려두고 논어를 편다.

이 책이 기억이 안 나지만 어떻게 내손에 들어왔다.
논어는 집에 몆권 더 있다.우연히 선택됐다.

앞에 서론이 길다.

긴 해설은  필요하면 참조하기로 한다.

바로 본문으로 들어간다.

제1편 학이(學而)

자왈 학이시습지 불역여호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
인부지 이불온 불역군자호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 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 而不온 不亦君子乎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배우고 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

벗이 있어 먼 곳으로터 찾아왔다면 매우 즐겁지 아니한가 ?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다 하여도 성내지 않는다면 군자다운  것이 아니겠는가?

자왈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이 구절은 고교시절 국어교과서에 인용된  구절이라 익숙하다.그래서 번역도 당시 국어 교과서 대로 해 봤다.

배우고 익히면 공자님 시절처럼 즐거워야 한다.

요즘도  그럴까?

유치원부터 선행학습을  부모의 계획대로 하니 배우는 것이 즐거울까?

나는 고등 졸업까지 사교육이나 선행학습이 없었다.

국민학교 입학 전  배운 것은 숫자 10까지  세기와 내 이름 석자 쓰기 였다.

진짜로 입학 후 고등졸업까지 교실에서 수업만 집중했다.

그러니 공자님 말씀처럼  등교해 수업에서 배우니 즐거웠다.

이런 즐거움을 요즘 아이들은 교실에서  느낄 수 있을까?

유붕 자원방래 불역락호

공자님처럼 멀리 사는 벗이 찾아오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신문 방송 인터넷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라  중국의  광활한  대륙의 소식은 매우 궁금했을 것 같다.

멀리서 오랑캐가  말 타고  약탈을 하러 오는 것이 아니라 소식 한 보따리를 갖고 친구가 온다면 얼마나 기뻤을까  ?

지금은 모두가 직장인이다.불시에 멀리 사는 친구가 찾아 온다면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아무 때나 친구를 만나 회포를 풀 수가 없다.
물질적 풍요를 위한 시대이니 어쩔  수가 없다.

인부지 이불온 불역군자호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면 군자답지 않은가?

이 구절은 누군가와 대화에서 상대방이  자기주장만 하고 내 의견에 귀를 안 기울여 줄 때 의미가  있겠다.

이럴 땐 내가 격앙되거니 상대방이 격앙되 폭력으로 불상사가 생겨 뉴스에 나오는 것을 본다.

나를 알아주지 않으니 자존심이 상하고 서로를 감정적으로 자극해 범죄의 결과로 끝나는 경우가 생긴다.

상대방이나 널리 남에게 내 주장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내 주장을 관철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면 또는 내 주장이 내 권리의 행사라면 소송이나 청원 등 구제 수단이 있다.

그러니 인부지 이불온 불역군자호 이 구절은 여전히 명심하는 것이 좋겠다.

오늘은 느닷없이 논어를 읽기로   한 날이다.

사실 이제 재미 있는 것도 없다.
농사짓는  것 말고 그렇다고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다.

이 무료한 시간 뭐 하나 싶다가
젊은 날 취미로 수집한  책들을 펼치고  읽는 것이 시작되었다.

70세 넘으면 요가를 가르치고 독서토론을 시작하려고 했었다.
몆년 시계가 앞 당겨졌다.

티스토리가 시작하라고 발동을 걸어줘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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