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기

해남의 전방후원분

마늘밭고랑 2020. 3. 5.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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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후원분

앞전. 모방. 뒤후. 둥글원 .무덤분

한글 세대를 위한 친절한 해설 ㅎㅎ

묘가 앞은 네모이고 뒤는 둥근형태의 모양.


지금 우리네 묘는 네모로 직사각형이거나 둥근 봉분이 대부분인데

이와 전혀 다른 모양도 과거에 전남에 있었죠.


이름하야 전방후원분


저는 촌구석에 박혀 있어 일본을 안 가봤지만

지금은 보내준다고 해도 방사능 무서워 안가요 ㅎㅎ

얘기가 옆길로 또 빠지려고 하네요.


일본 교토인지 도쿄인지 거대한 왕무덤이 있지요.









시내 중심가에 있는 이 거대한 일본 왕릉

전방 후원 맞지요.

이 전방후원분이 일본의 왕가 고유 무덤양식이라고 일본인들은 머리 속에 저장되어 있다죠.


아 글쎄 가만 보니 이 무덤 양식은 남해안에도 있더라 ????

용두리에 있어요.

용두 즉 풍수지리상 용의 머리에 해당되는 긴 야트막한 동산 같은 산줄기에 자리한 마을이라 용의 머리 즉 용두리

다음 스카이뷰 캡쳐



다음 로드뷰 캡쳐


국민학교 댕길 때 이 용두리에 있는 특이한 무덤이 있어

그쪽 동네 아이들이 말하길

저거 "말메뚱 "

말은 승마하는 말이라고 ?

말을 묻어 둔 무덤이라고 .

그런데 무덤이 길이만 20미터 이상에 무덤 위에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울창

나는 그때부터 말메뚱인가 보다 하고 믿다가


90년대인가 말메뚱을 정부에서 발굴 조사를 하게 되는데

조사하고 보니 놀랍게도 일본 왕릉형식의 전방후원분이라고 밝혀짐 .

발굴조사보고서를 안 읽어 봐서 무엇이 나온 것인지는 나도 모름.


분명 일본 국내에만 있어야 할 전방후원분이 일본 밖 남해안에 있다니 ???


여기서 한일 역사학자들은 미궁에 빠져요.

일본 이외에는 없어야 할 일본왕릉형식의 묘가 일본 밖에도 있다니 이것 뭐지???

 한국학자들도 .


문제는 여기만 있는 것은 아니고 해남에도 하나가 더 있고

광주광역시에도 있고 ....

더 있겠지만 아직 발견이 안되었을 수가 있지요.


전방후원분의 역사가 청동기나 철기시대부터 있었을 것이니까요.

2000년 가까운 세월동안 무덤이 낮아지고

밭으로 개간되거나 키타 사유로 원래 모습이 많이 깎여나가 낮아져 있을 가능성 때문이죠.


그래서 양국 학자들은 전방 후원분을 해석하길 서로 견해가 달라요.


일본학자들은 남해안에 임나일본부라는 통치기관을 두어  고대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한 증거라고 주장합니다.

한국학자들은 그게 아니고 전남 지역의 전방후원분을 설치하던  전남지역의 부족장들이 일본으로 진출해 일본왕가가 되면서

일본 왕실의 무덤이 된 거라고 .


누구 말이 맞을까요???


저는 국내학자들의 말이 맞다고 보네요.


그 전에 말메뚱이라는 어원을 풀어 볼 필요가 있지요.


말은 승마의 말이 아니라 우두"머리" 할 때 말 즉 "마루"라고 봅니다.

타고 다니는 말이 아니라 높다는 의미의 한자 "마루"종( 宗)에서 "마루"라고 보네요.

마루란 높은 즉 우두머리에서 나온 말이라고요.

산꼭대기를 "산마루"라고 하죠.


메뚱에서 메는 뫼산 (山 )의  "뫼"겠죠.

뚱은 둥글다 ?

말메뚱은 산처럼 높은 우두머리 즉 족장의 무덤이라는 의미로 봅니다.


위 용두리 전방후원분은 2000년 전에도 몆천마지기 벼농사와 밭농사가 가능한 집단이었을 것으로 보네요.


왜냐면 풍수지리설 상에도 명당 길지인 용두리에 위치한 것이 말해주듯

용두리 앞은 현재도 폭 100미터 이상의 상시 물이 마르지 않는 하천이 흘러요.

용두리를 중심 삼아 앞으로 평야지가 2키로 이상 펼쳐지고 오른쪽으로 1키로 이상 평야지이죠.

 이 정도 평야지이면 1000명 정도가 농사로 먹고 살 수 있고 이런 인구수를  통제하는 족장이 살았을 가능성이 있지요.

용두리에서 3키로 거리에 고인돌 집단이 있습니다.

여가 전방 후원분 주인공이 이 고인돌 집단과 연결되었을 가능성이 있지요.


이렇게 남해안에서 힘을 키운 집단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왕실을 이루고 전방후원분을 게속 만든 것은 아닌지 싶지요.

백제가 건국했어도 전남해안까지 직접 통치가 가능해진 것은 백제가 사비 부여로 천도한 후 였을 것으로 봅니다.

백제의 사비 부여 천도 이전에는 백제의 행정력이 전남까지는 미치지 못하고 현지의 족장 세력을 통한 간접통치였을 것으로 봅니다.

이런 현지 세력으로 족장들이 전방후원분을 만들다가 백제가 전남지역까지 완전히 장악하니 전방후원분은 더 이상 안 만들게 된 것은 아닌지 싶지요

.그렇지만 일본으로 건너간 세력은 일본에서 계속 전방후원분을 만든 것 같죠.


여기 전방 후원분에서 직선거리로 4키로 쯤 떨어진 곳에서  2000년 전 쯤의 큰무덤이 발굴조사되었는데

중국과 해상교류를 입증하는 물건이 발굴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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