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청앞 광장 분수대 조각
현대조각은 이해가 어렵다.
각자 마음대로 생각하라고 하는 것
군청앞 보호수
해남군청 수성송
수성송 때문인지 이 근방 마을 이름이 수성리
수성송에도 일제 강점기 때 송진 채취한 흔적인 듯한 상처가 보인다.
군청 민원실 옆의 해남읍성의 흔적
이것은 길게 서쪽으로 쌓인 성을 잘라내고 길을 내어 마무리 한 것으로 조선시대 축성 모습은 아닐 것 같다.
다만 돌은 그대로 활용했을 것이다.
성벽 안쪽의 모습인데 본래 모습인지 알 길이 없다.
몆년 전엔가 해남 읍성 자료사진을 찾는다는 지역신문인가 기사를 본 일이 있다.
1900년초까지는 아마도 성벽이 있었을 것이고 누군가 외국인이 사진으로 남겼을 법 한데 아직 그런 사진을 본 일이 없다.
구글 검색해 볼까나 ..
여기에 사용된 돌은 해남읍 뒤의 산의 돌과 재질이 같다.
잘린 성의 단면
군청 뒤편으로 돌아가 성 밖에서 본 모습이다.
뭐 누가 이런 석성을 보러 올 사람이 없으니 주변 모습이 방치된 채로 있다.
당연히 사유지일 것 같은데 관리가 안되고 있다.
백팩과 비교한 기단석 크기
기중기도 없고 수레도 없을 시기에 이런 큰 돌을 옮겨와 이렇게 쌓았다니
옛날 사람들은 힘이 장사였다는 말에 실감이 간다.
여기 돌은 어디로 간 것일까 ?
돌 한 개 빠졌다.
잉카석성은 돌이 물러서 인지 가공해서 돌이 착착 잘 맞는데 여기에 쌓은 돌은 편마암 비슷한 아주 강한 돌이다.
그러니 이렇게 아귀가 맞게 깰 수가 없으니 적당히 맞추고 세월의 무게를 못 이겨 이렇게 돌이 어디로 빠져 나간 것이겠다.
돌 빠진 자리 아래에 있는 돌
아마 이 돌이 위 사진의 구멍에서 나온 돌일까도 싶다.
여기도 돌이 빠지고
군청은 이런 문화재를 보수할 생각은 있는 것인지
바로 이 석성 안에 군청이 있다...
ㅆ
석성 높이 5미터는 되어 보인다.
해남 향토사는 잘 모르지만 임진왜란 전에 달랑포해전이 있었다.
을묘왜변 때 달랑포는 해남의 어느 항구인데 왜선이 침입했다가 격퇴되었다.
임진왜란 때는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우수영에서 건재하여 왜군이 전라도로 침입하지 못하고 있다
정유재란 때 왜군이 전라도에도 침입해 해남읍성도 함락되었다고 알고 있다.
해남 읍성 전체가 석성이었는지는 모른다.
만약 전체가 이런 석성이었다면 아무리 조총을 든 왜군이라도 함락하기 힘들었을 것 같은데 미스터리이다.
다만 40여년 전에 기억으로는 읍성이 서쪽으로 연장선상에 토성의 흔적인 높이 1.5미터 이상의 흙무더기가
군청 민원실에서 100미터 못가서 어느 집 마당으로 지나가는 것을 봤다.
당시에는 왜 그렇게 큰 흙 무더기가 마당으로 지나가는데 그대로 두었을까 의문이었는데
후에 생각하니 토성의 흔적으로 생각하게 됐다.
무안인지 어딘지 전남 어느 읍에도 비슷한 토성의 흔적을 보았다.
기중기도 없는 시절 사람 키 높이 이상으로 아마 1톤이 넘는 돌덩이를 어떻게 쌓아 올린 것인지 미스터리이다.
군청에 문화재 보수 예산이 얼마라도 나온다면 성벽 주변을 매입하고 깨끗하게 보수하였으면 좋겠다.
읍성이 일부이지만 이렇게 완벽하게 보존된 곳 더 이상 방치하면 안되겠다.
다음에 군청 가면 나머지 구간과 성벽 안쪽의 모습도 확인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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