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기

단작왔소

마늘밭고랑 2015. 11. 11.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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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가 일년에 종가는 소종가라도 보통 몆번이 있게 마련이다.

70년대까지도 잘 사는 집이나 못 사는 집이나 저녁 간식은 변변치 않던 시절이라

동네 누구네 집이 제사라고 하면 그날 저녁은 동네 청년들에게 맛난 간식을 먹을 기회였다.


당시만 해도 누가 군대를 간다 하면 송별이라 하여 동네 친구 선배 후배 모이면 10명은 되는데

닭 한마리 잡아 닭죽을 쓰면 충분한 정도로 먹거리가 풍족하지 못한 때라 평소 간식은 감이나  고구마, 무우 정도 였던가 싶다.


뿐만 아니라 테레비도 70년대 초에는 없어 밤이면 동네 청년들은 누구네 골방에 모여

이야기를 하거나 고구마 같은 것을 먹거나 하면서 잡답이나 하면서 시간을 보내던 시절이었다.


이런 식으로 놀다가 누구네 집이 제사라고 하면 그날은 땡 잡은 날이 되었다.

요즘처럼 제사를 간단히 지내는 것이 아니라 없는 살림에도 갖출 것은 다 갖추는 제사라

떡은 기본에다 각종 나물과 꼬막 같은 것까지 다 준비하였다.


이렇게 차려서 밤 10시가 넘어 제사가 끝나면 음복을 한다.

이 무렵에 동네 청년들 중 누군가에게 시켜 담양에서 만든 진짜 대바구니(요즘은 전부 수입산 -인천에서 화물로 들어오는

대바구니는 전부 담양으로 간다는 전설이?)를 하나 준비해 대문도 없던 시절의 제사 지내는 집의 마당으로 살금살금 간다.

당시엔 개도 거의 안 키웠다.

개를 키우려면 사람밥을 줘야 하는데 곡식도 귀한데 개한테까지 줄 곡식은 사치였다.


바구니를 들고 마당으로 잠입해서 문앞에다 바구니를 놓고

"단작왔소" 라고 말을 하고 어디로 숨는다.

그럼 제사를 지내던 며느리던 시어머니든

" 단작왔네"라고 말을 하고 바구니에 떡이며 나물 등을 넣어서 다시 마당에 내어 놓는다.


단작을 간 청년은 그 바구니를 들고 청년들이 모인 골방으로 돌아간다.

이렇게 70년대 초까지만 해도 농촌 마을에서 일년에 몆번은 이런 방법으로 맛난 야참 간식을 먹을 기회가 있었다.

후로 들은 얘기에 의하면 80년대 초까지도 동네 꼬마들에게 이 단작은 전수되었다고 한다.


요즘은 동네에 20대 아이들이 없다.청년은 50대이다.

간식도 풍성하고 인스탄트 먹거리도 넘치는 세상이라 이제 단작은 더 이상 동네에서 재미있는 놀이가 아닐 것이지만

20대 쳥년도 없으니 사라진 놀이이다.

물론 제사도 요즘은 약식으로 간단히 지내고 몰아서 "모둠제사"로 지내다 보니

누구네 집 제사가 있을까 기억하기도 쉽지 않다.


세상은 이렇게 바뀌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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