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식물 유전자 다양성 보존

재래종 돼지에 대한 추억

마늘밭고랑 2015. 5. 31.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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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래종은 모두 열등한 종자라 정부에서 앞장 서서 씨를 말리고 외국 수입종을 도입해서 보급하던 때가 있었다.

돼지도 그 중의 하나로서 지금은 재래종 돼지를 볼 수 없다.

국민학교 입학 전이니 지금부터 50여년 전의 경험이다.

 

우리집에도 마당가에 돼지막을 지어 돼지 한마리를 키웠다.

본채 작은 방에 딸린 곳에는  아궁이 앞을 길게 ㄱ자 집처럼 달아 내어 마굿간을 짓고 소도 한마리 키웠다.

마굿간이 본채 안에 있는 특이한 구조였다.

하여튼 당시 돼지를 집집마다 한마리 정도는 키우는 시절이었다.

 

그 당시에는 배합사료 개념 자체가 없어 돼지는 쌀겨와 보릿겨를 설거지한 물에 타서 먹였다.

당시에 주방세제가 없던 시절이라 설겆이 물에는 소금기와 음식찌꺼기만 있는 물이니 염분이 필요한 돼지가 먹어도 안전했다.

그뿐만 아니라 당시의 돼지는 풀도 잘 먹어 고마이때(고마리)라는 풀을 나는 열심히 베어다 돼지에게 먹였다.

국민학교를 9살에 입학하기 때문에 국민학교 입학 전이라도 낫질도 할 줄 알고 깔망태(꼴망태)를 메고 다닐 만한 시기였다.

 

돼지가 잡식성이다 보니 마당에서 풀어 키우던 닭이 돼지막으로 들어가면 돼지가 닭을 잡아 먹었다.

한번은 장난삼아 돼지막의 울타리인 나무 사이로 검은고무신을 신은 채로 발을 넣었다가

돼지가 신짝을 물어 황급히 발을 빼 다치지는 않았지만 돼지가 신발을 물어 뜯어 못쓰게 되어 어머니께 꾸중을 들었던 것 같다. 당시에 고무신을 사려면 5일장날 장에 가야 하는데 신발짝 때문에 장에 가실 일을 만든 셈이었다.

 

그 돼지는 재래종의 돼지라 당시에 외국에서 도입된 종으로 이웃에서 키우던 돼지들과 모습이 달랐다.

우선 체구가 조금 작고 상대적으로 머리에서 꼬리까지 길이가 더 길었다.

뿐만 아니라 팟대(주둥이)가 요즘 돼지보다 더 길어 멧돼지의 모습이었다.

요즘 재래종 흑돼지라고 소개하는 돼지는 주둥이가 짧아 미국에서 도입한 검은 돼지에 가깝다.

 

어느 날인가 키우던 돼지를 팔게 되었다.

당시에 돼지를 사러 오는 사람을 <육지기>라고 불렀다.

육지기가 사는 집은 <육고집>이라고 하는데 요즘 말로는 고기집 푸줏간의 의미이다.

 

육지기가 돼지를 돼지를 돼지막에서 다리를  묶어 꺼낸 후 짐빠리 자전거에 실어야 하는데

이 돼지가 야성이 살아 있어 묶지 못하고 돼지막 밖으로 뛰어 나와 골목으로 도망을 가버렸다.

이 돼지를 잡는다고 사람들이 난리치며 쫒아다녀 겨우 잡아 자전거에 싣고 갔다.

 

50여년이 지난 일인데 엊그제 일처럼 기억이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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