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기

명절과 제사 싫은 이유 중에 전과 튀김 때문은 아닐지?

마늘밭고랑 2024. 2. 9.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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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상 차림 중에 국 주과포혜라는 말이 있습니다.국은 탕국.술주.과일.포 즉 산적? 혜는 식혜? 전과 튀김에 해당하는 말은 없습니다.
전과 튀김을 하려면 식용유가 필요하죠.조선시대 식용유는 참기름 들기름 밖에 없습니다.보릿고개에  나라에 내는 조세에다 소작농들은  곡수(임대료) 내기도 빠듯해 쌀과 보리 조 된장용 콩  등을 제외한 작물을 심기는 너무 어려웠을 것으로 봅니다.

평야지대에 위치한 우리동네를 예로 들면 60년대 초까지도 보릿고개는 현실이었습니다.당시 저수지가 없어 천수답이라 큰 개천 주변의 보가 없으면 물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저수지가 없지만 야산에서 내려오는 시냇물에 보를 막아 벼농사를 지었습니다.뿐만 아니라  들판에 있는 용천수가 나오는 주변으로 논이 형성되 벼농사를 지었습니다.

겨울에는 당연히 논밭에 보리와 밀을 심었습니다.

이렇게 농사를 지어도 나주에 호남비료공장이 지어지기 전에는 화학비료를 충분히 쓰지 못하니 소출량이 적어 보릿고개가 있었습니다.

보릿고개란 가을에  벼농사 탈곡을 해도 쌀이 다 떨어져 봄에는 보리쌀도 없는 때입니다.겨울은 거의 고구마로 점심을 먹었을 정도입니다.고구마를 밥짓는데 넣어 고구마밭을 먹는 것은 일상이었습니다. 고구마 없는 집은 무를 썰어 같이 밥을 했습니다.

이런 실정이라 봄이 되면 식량이 없어 부자동네의 농가에 보리를 빌려 왔습니다.봄에 빌린 보리 한되(2리터)를 가을에 벼 한되로  갚아야 했습니다.당시에는 보리는 쌀보다 훨씬 싸고 가난한 사람들이 먹는 식량이었습니다.

이렇게 가난한 시절에 참기름이나   들기름으로  전을 붙이거나 튀김을 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당시에도 기름짜는 틀(나무로 만든 수동기계)로서 기름을 짜주는 집이 있었지만 콩기름은 안 짰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조선시대에는 전이나 튀김이 제사상 차례상에 올랐을 리 없습니다.지방 토호나 고관대작의 집에는 혹시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들어 본 적은 없습니다.

그러다 70년대 들어서면서 콩을 이용한 식용유가 판매되면서 식용유가 일반화됩니다.이때 튀김이 등장합니다.당시 튀김을 일본말인  덴뿌라라  했습니다.조선시대 튀김이 있었다면 덴뿌라라는 말을 안 썼겠죠.국어순화운동을 하면서 덴뿌라는 안 쓰이게 됩니다.

이런 연유를 알면 각종 전이나 튀김류는 제사상 차례상에서 추방할 때가 온 것은 아닌지 싶습니다.

제사 차례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 아닌데 조상님들은 하지도 않던 음식으로 스트레스 받을 일 없었으면 합니다.

말 나온 김에 한마디 더 합니다.
제사상에서 홍동백서紅東白西 조율이시棗栗梨枾라는 말이 있습니다.붉은색과일은 동쪽에 백색은 서쪽에 놓는다. 대추 밤 배 감 순서로 놓는다 .이 말 역시 조선시대 제사상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이랍니다.아무  순서대로 놓아도 된답니다.

조선시대 관혼상제 예법서의 집대성인 김장생의 가례집람의  목차를 봐도 현재 유행하는 제사상의  유래를 추정할 만한 이런 내용은 안 보입니다.
전체 내용은 안 봐서 모르지만요.

제사  차례는 후손들이 모여 경건하게 조상을 추모하는 것으로 충분하죠.더 이상 이상한 예법으로 스트레스 받는 날이 안 되었으면 합니다.

저도 부모님 제사를 곧 다시 지내야 합니다.지금은 동생이 지냅니다.제사를 지내게 되면 제사상 최대한 간소화 할 생각입니다.전과 튀김은 당연히 안 하고요.

참 요즘은 제사를 모신다라는 이상한 어법이 등장했습니다.모신다는 존대말이고 행사에는 안 씁니다.제사는 행사입니다.

지낸다는 말의 어원이 궁금한데 명사 제祭에서 파생된 동사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