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같은 기근은 더 이상 안 올 것으로 믿습니다.
이미 아주 깊은 곳까지 굴착이 가능한 지하수 굴착기술이 있습니다.
또한 조선 중기까지 아마 없었던 감자와 고구마가 이미 대량수확 작물로서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독한 가뭄이 온다면 감자 고구마도 수확을 기대하기 어렵겠죠.
그래서 이전에 먹었던 구황작물 몆가지가 생각납니다.
저도 어릴 적에 먹어봤으니까요 .
대표적인 것이 칡과 쑥입니다.
우리동네 가난한 집 아들이 어릴 때 쑥줏을 얼마나 많이 먹었던지
어느 해 봄에 어머니 왜 올해는 쑥 안뜯어요 ?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매년 춘궁기에 쑥을 뜯어 쌀 한 줌 넣어 죽을 쑤어 먹는 것이 연례행사였는데
그해 봄부터는 쑥죽을 안 먹게 되면서 생긴 일화입니다.
칡의 경우 기근이 들면 산에 칡도 귀해지는데
칡은 2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나무칡과 가래칡입니다.
나무칡은 그야말로 나무뿌리처럼 질긴 칡으로 녹말 성분이 적습니다.
나무칡이 되는 이유는 땅이 척박한 곳에서 자라면 칡뿌리가 충분한 영양분을 뿌리에 저장하지 못해
녹말분은 적고 섬유소만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나무칡을 어릴 때 많이 먹게 되면 광대뼈가 튀어나오고 사각턱이 되기 쉽습니다 .
지금 60대 이상의 얼굴에 흔적이 남은 웃기고도 슬픈 이야기이죠.
가래칡은 흙이부드럽고 돌이 적은 양지바른 곳에서 자란 칡입니다.
이것은 아주 녹말분이 많아 생칡을 마치 오징어나 쥐포 먹듯이 손에 들고 다니면서
입으로 조금씩 찢어 먹게 됩니다.
나무칡은 입안에 녹말이 적게 녹아 나와 먹는 시간에 비해 녹말 섭취가 적은데 비해
가래칡은 아주 부드럽고 녹말도 많이 나와 가래칡이 많은 곳으로 칡을 캐러 가게 됩니다.
기근이 들면 이 가래칡을 10cm 정도 길이로 잘라 말린 후
절구에 넣고 찧어 체로 거르면 녹말분만 남게 됩니다.
이 칡가루를 쌀이나 보리를 넣어 죽을 쑤면 칡죽이 된다고 합니다.
저는 쑥죽이나 칡죽은 안 먹은 세대이지만 아버지로부터 들은 이야기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옛날 사람들은 약초를 먹고 살았다고 재해석하지만
당대 살았던 사람들은 배고파 죽을 지경이었죠.
이것 말고도 더 구황작물이 있습니다.
물론 저도 먹어봤습니다.
올방개라는 논잡초가 있습니다.
이것이 일반제초제로는 박멸하지 못해 급속히 번지면 아주 곤란하게 됩니다.
전용제초제가 있는 것으로 알아요.
이 올방개를 우리동네에서는 오리밥이라 부릅니다.
올방개의 땅속 뿌리가 있는데 밤색으로 메주콩알 만한 크기입니다.
소로 쟁기질을 하면 나오는데 어릴 때 아부지 쟁기질을 하실 때 따라 가 올방개를 주워 먹었죠.
단맛이 나고 속은 흰색살로 차 있습니다.
만약 올방개를 개량하여 땅콩알 크기로 키우면 간식거리로도 상품화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이외에도 띠뿌리도 구황식물입니다.
띠는 요즘은 활용이 없어 이제 잊혀져 가는 식물입니다.
예전 김은 전부 햇볕에 건조시켰습니다.
이 김을 햇볕에 말릴 때 판에 김 한장 크기로 앏게 펴야 하는데 이 판을 띠로 만들었습니다.
띠의 다른 용도로 아주 가는 돗자리의 경우 이 띠가 재료입니다.
이 띠의 뿌리는 평소 만날 일이 거의 없습니다.
황무지를 개간할 때 예전에는 삽으로 한삽 한삽 땅을 파서 뒤집었습니다.
띠가 무성한 곳에서는 땅을 뒤집으면 띠 뿌리도 같이 올라옵니다.
이 띠뿌리가 단맛이 나며 맛이 좋습니다.
이것 먹는 재미도 있었는데 요즘 아이들은 먹지 않을 것입니다.
과자가 없던 60년대 중반 어린 시절 이것 먹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이외에도 한가지 더 있는데 수크렁 새잎입니다.
일과 시작할 시간이라 여기서 멈춥니다.
이글은 블로그에도 동시에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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