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기사체로 씁니다.
우리집에서 머슴을 고용한 것이 아니고 주변에서 본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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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사라진 말
새경 :농가 머슴의 1년 품삯
머슴은 음력 설을 기준으로 설날 이후 부터 다음해 설날 전인 섣달 그믐날까지 1년 단위로 고용한다.
임금은 새경이라 하여 월단위 월급이 아니고 1년 단위에 고용이 끝난 날 계산한다.
머슴이 흔하던 당시에 머슴의 품삯은 성인인 경우 우리동네는 벼 7섬이었던가 .
이를 도정하면 쌀 80kg 7~ 8가마는 된다.
요즘 기준으로 이렇게 저임금으로 아침 동틀 때부터 저녁 해질 녁까지 들판에서 머슴을 혹사시킨 지주는 악한으로 묘사하기 쉽겠다.
그래서 부가 설명이 필요하다.
머슴은 종이 아니다 .
그래서 주인과 같은 집의 사랑채에 살고 , 주인과 밥상을 겸상하고 ,옷과 담배를 사주고 ,식사 때마다 반주로 최소한 소주나 막걸리가 올라 오고 등등 대우를 받았다.
게다가 당시 논값이 경지정리가 되지 않았던 200평 한 마지기당 우리동네의 경우 벼 7섬이었다. 머슴 1년 살면 새경만으로 논 한마지기를 살 수 있는 대우이니 그렇게 야박한 경우라고 볼 수 없었다.
이렇게 새경을 받아 논을 살 수도 있지만 새경받은 벼를 샛거리(벼를 현물로 빌려주고 현물로 이자 포함해 받음. 이자부 소비대차)로 빌려 주면 이자가 년리 2할5부(25%)이던가 하여튼 지금과 비교해서 고금리 사채를 놓을 수 있었다.
당시에 농촌은 지금처럼 사회가 부침이 심하지 않고 안정적인 사회라 무담보 샛거리가 떼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일은 고되지만 머슴을 몆년 하면 논마지기 마련하는 길이 있어 일종의 신분상승을 할 수 있는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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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여
70년대 고도성장기에 도시에 공장이 많이 생겨나면서 가난한 농촌사람들이 도시로 이주하는 이농향도(移農向都)가 본격화된다.
이 시기에 농촌에서 점차 머슴이 사라지는 시기에 태어난 사람들은 머슴을 만날 기회가 없어졌기 때문에 새경이란 말도 점차 듣기 어려운 말이 되고 이제는 사라진 말이라 새경이라는 말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때 마쳐 경운기가 보급되며 경지정리가 되어 바둑판 같은 농지에 농로가 정비되고 더불어 다른 농기계들도 보급되기 시작하여 일손이 많이 절약되어 머슴의 필요성은 줄었다.
여기에 농산물 가격과 도시 임금의 격차가 커지면서 머슴살이를 하는 것보다 도시에 이주해 공장노동자가 되는 것이 훨씬 유용해지면서 머슴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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