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image

사람의 산파와 송아지 산파.

마늘밭고랑 2009. 1. 16. 22:15
728x90

 정(情) - 사람의 산파와 송아지의 산파   조회(48) 2008/06/26  
사람의 산파와 송아지 산파.

 

1.나를 위한 산파님

나는 내가 세상에 나올 때 내가 누구를 처음 보았을까 물어 본 일이 있었다.이 말은 바로 누가 뱃속에서 나오는 나를 받아서 탯줄을 자르고 거꾸로 들고 엉덩이를 때려 첫 목소리로 울게 하였으며 동시에 나의 폐로 숨을 쉬도록 해주셨으며 이어 목욕을 시키고 배내옷으로 나를 감싸서 어머니 옆에 뉘이신 분이 누구신가 하는 물음이었다.

 

나는 병원 출산이 희귀한 시절에 세상에 나왔기에 당연히 우리집에서 세상에 나왔다.친가쪽 친족은 한마을에 거주하였던 시절이기에 어머니가 나를 낳을 때 출산에 대한 경험이 많은 분이 옆에서 도움을 주셨을 것이고 그 분은 당연히 할머니 아니면 큰어머니였을 것이다.
 
그런데 할머니는 이미 고인이 되셨기에 웬지 평소에 항상 내게 어머니처럼 따뜻하게 대해주신 큰댁의 큰어머니셨다.이런 인연 때문인지 이제는 고인이 되신지 여러해가 지났지만 가끔은 큰어머니가 생각이 난다.세상에 올 때의 첫 대면은 기억이 없지만 나의 무의식의 깊은 바닥에는 나를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위에서 말한 여러 조치를 해주신 장면이 아로 새겨져 어머니처럼 항상 편안한 마음이 큰어머니를 대할 때 나도 모르게 들었는지 모르겠다.

 

2.내가 산파를 한 일

 

나는 남자이지만 위와 비슷한 산파 역할을 한 적이 있었다. 우리집 소가 송아지를 낳을 때의 일이다. 군제대 후에 어느 날 소의 출산예정일에 대청마루에 앉아 있었다. 소의 출산 예정일은 소의 키워보면 짐작한다. 황소를 만난 날을 기록해 두고 10개월정도가 지나면 보인다.
 
먼저 젖이 불어서 짜보면 젖이 나온다.사타구니 언저리가 붓는데 아마도 골반이 확장되어 산도가 넓어지도록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물론 몸이 만삭의 임산부처럼 불어나는 것만 보아도 어느 정도 예측을 할 수는 있다.
당시에 출산예정일이 다가온 것을 알아서 마당에 짚을 푹신하게 깔아두고 고삐는 느슨하게 매어 두었다.분만이 임박한 것을 보고 마당으로 내려가 소의 뒤에 섯다.아버지보다 체격이 더 좋고 힘이 더 있는 내가 그 일을 하는 것이 당연하였다.

 

송아지가 좀 커서 잘 안나오는지 어미소는 앉아 있다가 섯다를 반복하면서 송아지가 나오기 쉽도록 도왔다.송아지의 앞발굽과 코가 보이고 송아지가 나오기 시작했다.하지만 운나쁘게도 몸통의 반이 나오고 뒷다리 부분이 나올 때 어미소가 일어났다.
잘못하면 송아지가 어미에게 분리되는 순간 어미의 엉덩이에서 마당으로 추락할 상황이었다. 맨손으로 서 있는데 앞뒤 가릴 것이 없었다.송아지를 팔에 안아서 완전히 나오자 땅에 내려 놓았다.
 
땅에 내려 놓고 보니 눈은 떠서 나를 쳐다보는 듯 한데 숨을 쉬지 않았다.콧구멍에 투명한 미끄러운 우무같은 액체가 들어 있기에 코를 손으로 만졌더니 송아지가 첫 숨을 길게 내쉬자 우무같은 액체가 밖으로 뿜어지듯이 흘러 내리고 호흡을 시작하였다. 첫 호흡이 내뱉는 호흡이면서 동시에 “음메”하는 소리를 힘차게 외쳤다.
탯줄이 사람과 달리 저절로 끊어진다. 앉아서 분만하면 어미소는 송아지를 핥아주기 위하여 즉시 일어서고 그 순간 탯줄은 배꼽에서 적당한 길이를 남기고 끊어진다.
 
서서 분만하면 송아지가 땅에 닿으면서 역시 탯줄은 끊어진다. 몆방울의 피가 나고 지혈은 자동으로 된다.
일반적으로 송아지는 분만 후 어미소의 혀가 몸에 닿는 첫 접촉이고 가까이에서 보는 첫 인상이지만 우리 그 송아지는 내가 그 역할을 하였다.
이런 인연으로 만난 때문인지 그 송아지(숫소)는 내가 평소에 곁에 가서 만져도 가만히 있었다.
 
젖소 송아지는 사람이 젖을 먹여야 하기에 사람의 손길을 피하지 않을 것이지만 자연분만한 한우 송아지는 일반적으로 주인 여부를 불문하고 사람의 손길을 피한다.
그 송아지는 내가 마치 애완동물처럼 만질 수 있고 데리고 다니고 아이들이 귀엽다고 어른이 아이 고추만지듯 곁에 다가온 송아지 새알을 만질 수도 있었다. 또한 가만히 있으면 스스로 다가와 나를 올라타기도 하는 등 장난을 하기도 하였다. 마치 어미소나 비슷한 시기에 낳은 친구인 다른 송아지에게 하는 행위와 같은 모습이었다.

 

3. 어머니 이외에 정 붙일만한 이가 없는 세상

 

사람이든 동물이든 세상에 올 때 첫 대면과 첫 손길을 거친 이에게 이처럼 편안한 마음을 갖는지 모를 일이다.이제는 사람은 병원출산이 일반화되어서 할머니나 큰어머니 이모, 고모 같은 분의 도움이 없이 세상에 나온다.  그래서 내가 큰어머니에게 ,큰어머니가 나에게 베푸신 것과 같은 어머니 이외의 분에 대한 ,어머니 이외의 분으로부터 특별한 감정과 대우를 받기 어렵지 않을까 한다.물론 출생한 병원의 간호사나 의사에 대하여 그런 느낌을 가질 수도 있지만 제3자이기에 살아가면서 대면할 일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의학발전이 가져온 장점은 사람에게 질병과 사고로부터 회복에 많은 혜택을 주지만 동시에 출생의 경우에 한해서는 예전과 같은 어머니 이외에 편안한 느낌을 갖는 대상을 만들기 어렵게 된 것은 아닐까? 출산의 과정에서 난산으로 인한 산모와 태아의 사망율을 낮추고 태아의 장애 발생 가능성을 제거하기 위하여 의학적인 처치가 필요할 수도 있으므로 병원출산이 필요하지만 동시에 아쉬운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