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놀이와 장난감

장구 연주법 중 지금과 달랐던 우리동네

마늘밭고랑 2024. 10. 15.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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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 동네가 아닌 조선시대부터 있었던 우리동네 이야기이다.

전통적으로 있던 동네 중에 모든 동네에 다 전승무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70년대 초까지 면 지역 동네 중 특정 몆동네에만 전승무 즉 조상 대대로 무당을 하는 집이 있었다.

이렇게 무당이 있었던 동네는 각종 악기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군굿치는데(농악놀이) 전통 악기 중   꽹맹이 (꽹과리) 북 장구 소고만 연주했다.
어느 동네 할아버지는 혼자 국민학교 운동장에서  태평소를 부는 것을 봤다.

우리동네는 태평소는 없었다.
동네에서 망자를 위한 큰굿(무당 혼자 하는 작은 굿이 있고 악사를 여러명 대동하여 장구 치고 피리를 불며 하는 굿 )을 하는데 등장하는 악기로 향피리까지 있었다.

하여튼 농악에서 관악기는 없었다.

그중 특이한 것으로 장구 연주법이 지금 전국에서 하는 방법과 달랐다.가락은 내가 모르니 가락장단이 전국에서 하는 것과 다른 것인지는 모른다.

악기를 다루는 전승무가 동네분들에게 장구 연주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요즘 모두 장구를 두개의 채를 들고 친다. 우리동네 장구는 한손에만 장구채를 들고 한손은 맨손으로 친다.
아마 오른손 장구채 왼손 손바닥이었 것 같다.

이 연주법이 군내 전체 연주법이었는지는 모른다.아마 군 전체 연주법이었을 것이라 짐작한다.한 지역의 문화가 한 동네에만 전승되었을 리는 없다.

이 연주법으로 장구를 치면 장구채  쪽의 고음과 손바닥 쪽의 중저음의 조화가 이뤄진다.

지금 두손 모두 장구채를 가진 연주법은 고음 뿐이다.북에서 저음이 나긴 하지만 장구 저음은 경쾌한 소리를 겸한 저음이다.

지금 군내 농악공연을 가까이에서 안 봐서 두손 모두 장구채를 쥐는 연주법인지 모르겠다.워낙 전국에서 농악을 배운 사람들이 가르치고 배웠기 때문이다.

해남의 한손 장구채 방식이 어느 동네에라도 보존이 되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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