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놀이와 장난감

소 등위에 타고 싶었다

마늘밭고랑 2015. 6. 20.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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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벽화에 보면 동승이 소를 타고 피리를 부는 장면이 있다.

스님이 소를 타고 있는 것은 그냥 편의에 의해서로 보이지만 사실은 다른 의미를 품고 있다.

스님은 걸어다니지 소를 타고 다니지는 않는다.

심우도에 관한 깊은 의미는 여기서 언급하지 않겠다.


이런 심우도를 보아서인지 몰라도 어린 시절 언제부터인가 소의 등을 타고 다니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아니 말을 타고 싶은 마음의 연장선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린 남방 아시아에서 유입한 농경민족과 북방에서 내려 온 기마민족의 혼혈이라

말을 타고 싶은 마음이 유전자에 새겨진 것인지도 모른다.

말이 아니면 소라도 타고 싶은 것일 수도 있겠다.


이런 생각이 실제로 실험으로 나타난 것은 중학교 시절이었던 같다.

어느해 여름날 보니 옆집에 사는 창현이는 암소의 등을 타고 다녔다.

창현이가 아마도 중학교 1학년 무렵이었을 것이다.

요즘 말로 비루빠진 형편없는 소였는데 안장도 없이 중학생 하나는 거뜬히 등위에 태우고 따각따각 발굽 소리를 내며 비포장 신작로를 잘 다녔다.


호기심에 나도 우리집 암소의 등을 올라타고 다니고 싶었다.

그 시절 이렇다 할 놀이도 없고 심심하던 차에 들에 매어 둔 소에게 다가가 등에 올라타려고 하니

내 몸무게가 당시 50kg이 넘어 무거웠던 것인지 소가 펄쩍 뛰어 실패했다.


우리집 소는 이미 당시 구루마를 끌고 다녀 웬만한 무게는 잘 버틸 정도였는데

사람을 등 위에 태우는 것은 생소한 것이라 거부했을 것으로 본다.

참고로 소가 구루마를 끌기 위해서는 소의 등에 안장에 해당하는 <질매>를  올려

밧줄로 단단히 소의  배에 고정시키고 구루마의 <쇠장>을 건다.





이렇게 질매와 쇠장에 의해 고무 타이어 구루마에는 벼 10섬 즉 1200kg (현재 10섬은 800kg 으로 단위 인하) 까지 싣고 읍내 장에 끌고 갈 정도로 운반수단으로는 구루마는 효율적이다.

당시 체중 500kg 내외의 한우 일소의 능력으로 대단하다.

이런 능력을 가진 소라 당연히 내 몸무게 정도는 버텨야 하는데 우리집 암소는 등 위로 올라타는 것은 거부했다.


창현이보다 1년 선배인 나도 우리집 소를 타고 다닐려고 이렇게 몆번 시도를 했는데 아부지가 꾸중을 하여 그만 두었다.

꾸중을 한 이유는 소가 허리를 다친다는 것이었다.

나보다 경험이 많은 아버지라 아버지 말씀이 맞는 것일 수도 있다.

소가 질매를 메고 짐을 끌거나 멍에를 올려 쟁기를 끄는 것과 직접 등 위에 타는 것은 다른 의미가 될 수 있다.

질매나 멍에는 소의 등 즉 허리에 그렇게 큰 부담을 주지 않고 발굽으로 땅을 지탱하는 발바닥에 힘을 주게 하는 것이다.


숫소를 타고 다니면 몰라도 암소를 타고 다니는 것 좋지 않은 것은 일 수도 있다.


지금은 생각이 바뀌어 기마민족의 피가 흐르는 것인지 역시 말을 한 마리 사서 타고 다니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보통의 승마용 말 값이 자동차 값보다 싸다.

한가해지면 정말 말 한마리 사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