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사라진 말 새경
머슴이 1년을 살고 섯달 그믐날날이 되기 전에 받는 연급입니다.
월급은 월마다 받으니 월에 받는 급여입니다.
새경은 1년간 농가에 입주하여 농사일을 하고 받는 년말에 받는 연급입니다.
새마을운동이 시작되던 70년대 초까지 농가에 머슴이 더러 있었습니다.
왜 70년대 초까지인가 ?
새마을 운동이 시작될 무렵 도시화와 공단화로 이농도 시작됩니다.
도시로 가거나 공장에 가면 월급도 나오고 일요일은 쉴 수도 있습니다.
년중 무휴 머슴보다 공장 노동자나 건설현장의 노동자가 더 나은 삶입니다.
이러니 머슴은 점차 사라지게 됩니다.
또한 70년대 초부터 농가에 경운기가 보급되기 시작합니다.
이제 농사가 많은 농가들이 굳이 소로 쟁기질을 하고 소로 써레질을 할 필요가 없게 된 것입니다.
누가 머슴이 되는가 ?
자기 농사가 없는 성인남자입니다.
당시 농촌에 거의 대다수 인구가 살았습니다.
농지는 지금 농가들보다 경작 규모가 5분의1에서 10분의 1규모 였습니다.
이런 실정이라 동네에 농지가 없는 농가들이 있었고 있더라도 몆마지기도 안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사람들도 자식이 몆명씩인데도 농사로 먹고 살수 없습니다.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말이 이런 경우입니다.
머슴이라도 살아야 했습니다.
여자 머슴은 본 일이 없습니다.
간혹 미성년자도 머슴이 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농사 규모가 요즘 말로 대농이 아닌 농가입니다.
당시 대농 여부는 우리 동네 기준은 논만 7000평 정도였습니다.
논 35마지기에 밭도 10마지기(1000평)라야 부자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습니다.
이 정도 아니라도 미성년자를 머슴으로 들여 농사일을 시킬 수도 있었습니다.
새경을 조금 덜 주면 되니까요.
머슴은 음력 설을 기준으로 설날 이후 부터 다음해 설날 전인 섣달 그믐날까지 1년 단위로 고용했습니다.
머슴이 흔하던 당시에 머슴의 품삯은 성인인 경우 우리동네는 벼 7섬이었습니다 .
이를 도정하면 쌀 80kg 7~ 8가마는 됩니다.
아니 이 정도로 년중 무휴로 해가 뜨면 일 시작하고 해가 지면 일을 끝내는 머슴살이를 했단 말인가 ?
머슴을 고용한 대농들은 모두 악당 아닌가 ?
지금 기준으로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사정으로 돌아가 봐야 합니다.
우리동네는 평야지입니다.
당시 논 1마지기 (200평)은 매매 가격이 놀랍게도 머슴 1년 새경인 7섬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도 우스개 소리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동네 논밭집 다 팔아 서울가면 땅 1평도 못 산다 .
그만큼 서울에서 먼 곳일수록 땅값이 쌌습니다.
그럼 지금 가격으로 환산을 해 봅니다.
지금은 우리동네 논1마지기 사려면 2500만원 정도입니다.
군청이 가까울수록 더 비쌉니다.
결코 머슴 새경이 싼 것이 아닙니다.
객지로 나가 사업을 하지 않고 월급 받는 생활을 해도 1년에 2500만원 저축이 쉽지는 않을 것으로 봅니다.
새경은 나락으로 받았습니다.
당시는 고리의 이자가 보통입니다.
당시에도 이자제한법이 있었지만 벼를 대여하는 경우에는 이자제한이 없었습니다.
새경을 받아 빌려주는 샛거리(벼로 하는 이자놀이)를 놓으면 이자가 25~50% 정도였습니다.
샛거리는 나락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일종의 고리대입니다.
은행 저축보다 훨씬 고금리입니다.
그래서 농가들이 논10마지기만 되면 샛거리로 금방 부가 쌓일 수 있었습니다.
어쨋거나 농촌에서 나락이 필요한 사람들은 많았으니까요.
논을 산다거나 성주(새집을 건축)를 하거나 자식을 결혼시킨다거나 등으로 목돈이 필요했습니다.
샛거리를 놓았다가 떼이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돈을 떼일 만한 성향이 있는 사람에게는 샛거리를 주지 않았습니다.
누가 불성실한지 동네 사람들은 그 사람의 할아버지 때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예컨데 노름을 한다거나 난봉꾼이라거나 등입니다.
머슴은 종이 아닙니다.
중간에 사정이 생겨 그만 두어도 되었습니다.
대부분 섣달 그믐날(설 전날 )까지는 고용한 농가에서 살면서 일을 도왔습니다.
주인 집의 사랑채에 살았습니다.
사랑채가 없으면 본채의 방 하나에 살았습니다.
주인과 밥상을 겸상합니다.
흡연자는 담배를 사줍니다.
식사 때마다 반주로 최소한 소주나 막걸리가 올라 오는 등이 대우를 받았습니다.
이런 대우를 보면 서양의 농노나 조선시대 종과는 다른 주인과 평등한 신분입니다.
요즘 소설이나 학술서적에서 머슴을 뭐라고 묘사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농촌 원주민으로서 제가 경험한 바는 머슴이 그렇게 비천하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머슴도 요즘 대다수 직장 생활하는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머슴살이라면 어감이 이상합니다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