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야지 팟대
해남에서 쓰는 말이다.
뒤야지=돼지.
팟대=주둥이
재래종 돼지의 주둥이는 길었다.
이렇게 긴 주둥이는 현재 멧돼지에 남아 있다.
재래종 돼지도 60년대에는 농촌에 있었다.
그때에도 이미 체구가 작고 빨리 안 자라는 재래종 돼지보다 유럽에서 들여온 돼지들이 사육되고 있었다.
요크셔 바크셔(흑돼지) 같은 품종이다.모두 주둥이가 짧다.요크셔는 백돼지라 불렀다.
햄프셔는 몸에 흰띠를 두른 귀여운(?) 돼지이다.두룩저어지라는 품종은 주변에서 못 봤다.
재래종 돼지는 성질이 사나웠다.
초등학교 입학 전 우리집 마당에 돼지막(우리)를 짓고 아버지께서 새끼돼지를 사오셔서 길렀다.
어린 마음에도 돼지가 귀여울 정도로 꿀꿀거리며 왔다갔다 했다.돼지막의 앞은 팔둑 굵기의 나무로 살
성체가 되기 전에 사립문(나무살)처럼 만들어 못 나오게 했다.
나무 틈새로 닭이 들어갈 수 있었다.닭은 낮에는 마당에서 풀어 두었다.
돼지가 어느 정도 자라자 돼지막에 들어간 우리 닭이 돼지에게 잡혀 먹었다.내눈으로 본 사실이다.
하루는 내가 돼지막 앞에서 돼지가 귀여워 고무신을 신은 채로 나무 사이로 발끝을 넣으니 돼지가 고무신을 물고 벗겨지자 돼지가 신발을 먹을 듯이 씹었다.
나는 어려서 내 손으로 신발을 가져오지 못하고 아버지께 말씀드렸다.아버지께서 돼지막에 들어가 신발을 찾아오셨다.
이렇듯 돼지는 잡식성이라 작은 동물을 잡아 먹고 사람도 물어버릴 수 있을 정도이다.
신발을 물고 들어간 것도 신체를 문 것이라 할 수도 있다.
이 재래종 돼지는 팔렸다.
처음부터 팔려고 키운 돼지였으니까.
팔려가는 날 육지기들이 왔다.#육지기란 지기 즉 직(職)이고 정육점 사장이다.
당시 오토바이는 귀한 시절이라 육지기들은 #짐빠리자전거 (100kg 내외의 짐을 싣고 다니는 두바퀴의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정육점 사장들도 오토바이를 살 수 없었던 시절이다.
다큰 돼지라 팔아야 한다.
팟대가 길고 검은 재래종돼지라서 성질이 사나워 육지기의 손에 잡혀 네발이 묶여 짐빠리자전거에 실려야 한다.
그런데 돼지가 돼지막 나무살들을 제거하자 마당으로 나와 사립문이 없어 골목길로 도망갔다.
재래종 돼지는 준멧돼지라 쉽게 통제가 안됐다.돼지 잡으러 뛰다니느라 수고 좀 했다.
결국 잡혀서 짐빠리 자전거에 실려 갔다.
그뒤로는 아버지는 돼지를 오랫동안 안 키우셨다.한번 더 돼지를 키우셨다.이 얘기는 다음 쓴다.
이글을 쓴 이유는
어느 생물 전문가가 돼지에 관한 영상을 찍어 공개했다.
그 영상에 한국 재래종 돼지는 한국 멧돼지와 유전적으로 가깝지 않고 외국 쪽에 가깝다고 말해서다.
그 전문가 나보다 어리던데 농촌 출신이 아니거나 농촌에서 자랐어도 재래종 돼지가 요크셔로 대체된 후에 자란 세대가 아닐지 ?
제주 흑돼지도 내가 어릴 적 본 재래종 돼지와 외모가 다르다.오히려 제주 흑돼지는 바크셔와 비슷해 보인다.
못살고 가난한 한국에서 선진 외국에 열등감 있던 오래 전 정부나 학계는 외국 품종 들여오는 것을 선호했다.
그결과 많은 재래종들이 사라졌다.
대표적인 것이 재래종 당나귀와 돼지이다.
지금 당나귀들은 모두 외국의 십자당나귀들로 보인다.
아쉽다.